“누구나 당할 수 있었다”…‘선순위 저당권’ 있는데도 전세계약 맺은 이유

“저라고 근저당권이 걸려 있는 집이 불안하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이 이 주변에 100채 넘게 보유한 자산가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집주인이 이 빚(근저당) 못 갚으면 어쩌냐고 불안해하니, ‘혹시 경매로 넘어가도 시세를 볼때 보증금은 무난히 돌려받을 정도’라고 설득했고요. 중개사만 철썩 같이 믿었는데….”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김아무개씨·32살)
9일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네트워크가 지난 8월24일∼9월17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1579가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선순위 저당권이 있는 집인데도 전세 계약을 한 이유를 묻는 항목에서 응답가구(762가구)의 86.7%(661가구)가 ‘공인중개사 등 제3자의 설득·기망’을 이유로 꼽았다. ㄱ씨처럼 매물을 보여준 중개사가 임대인의 재력, 유명세, 직업 등을 앞세워 안전 매물이라고 설득했거나,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거짓·과장으로 홍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수사기관과 정부의 전세사기 수사·조사 결과 건축주·분양대행사 등과 짜고 바지 임대인이나 임차인을 끌어들인 뒤 수천만원의 리베이트를 챙긴 공인중개사들이 무더기로 적발돼 왔다.
중복 응답이 가능했던 이 설문조사에서 응답가구의 40.9%(312가구)는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되지 않은 집을 찾을 수 없어서’를 계약 이유로 답했다. 또 40.7%(310가구)는 ‘정확한 매매가와 전세가 시세를 알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중)이 80%가 넘는 ‘깡통주택’인데도 전세계약을 맺은 이유에 대해서도, 이 항목 응답가구(316가구) 중에 ‘공인중개사 등 제3자의 설득·기망’을 꼽은 피해가구가 73.1%(231가구)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정확한 시세를 알 수 없어서’가 63.9%(202가구)였고, ‘전세가율이 80% 미만인 집을 찾을 수 없어서’도 41.1%(130가구)로 나타났다. 서울 강서구 전세사기 피해자 박아무개씨(34살)는 “피해 가구 대부분이 전세가율이 천정부지로 솟던 2021∼2022년 전세계약을 했다”라며 “전세사기는 당시 빌라 전셋집을 구했던 누구나 당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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