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탁사 입찰에 100조원 요구한 재건축 조합장...특정 업체 몰아주기?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재건축 조합에서 특정 업체를 부동산 신탁사로 선정하기 위해 몰아주기에 나선 정황이 포착됐다. 조합은 입찰 공고를 통해 그룹사 자산 포함 100조원 이상 회사에게 대폭 가산점을 주기로 했는데, 자산 총액 100조원이 넘는 회사는 은행권을 모회사로 둔 신탁사 밖에 없다.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양평 신동아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현재 신탁 회사를 선정 중이다. 양평 신동아아파트 재건축은 현재 495세대인 아파트를 허물고 684세대를 새로 짓는 사업을 말한다. 신탁방식 재건축은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가 시행을 맡아 서울시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사업 속도를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신동아재건축 신탁사 입찰공고문을 살펴보면 통상의 입찰 공고와는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신동아아파트 조합은 그룹사 자산을 포함해 총 자산이 100조원을 넘는 신탁사에 최대 15점의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또 자산금액이 5조원을 넘지 않으면 해당 부분에서 점수를 0점으로 책정한다. 이 경우 은행을 모회사로 둔 하나자산신탁·KB부동산신탁은 15점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지만, 타 회사의 경우 0점을 받게 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하나금융그룹의 자산 규모는 512조원·KB금융그룹은 726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총 자산규모인 483조원을 넘는 수치다.
하지만 이들 은행 그룹사의 자산은 신탁사의 자산이 아니다. 이 같은 이유로 통상 정비사업 조합은 신탁사 입찰시 그룹사의 자산 규모가 아닌 신탁사의 자산·사업실적·재무건전성 등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신탁업계 양대산맥인 한국토지신탁·한국자산신탁의 자산 총액 규모는 각각 1조4000억원·9000억원 수준이지만, 은행권을 모회사로 둔 하나자산신탁·KB부동산신탁의 자산규모는 5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신동아아파트 재건축 사업 규모가 1000억원 남짓인 것으로 아는데 100조원 이상의 자산 규모가 왜 필요한건지 모르겠다"며 "여지껏 처음 보는 내용의 입찰 공고문"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누가 보더라도 특정 회사에 치우친 입찰공고"라며 "입찰 공고문을 내는 주체가 결정할 일이겠지만, 특정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신동아재건축 조합은 입찰 공고를 통해 '타 정비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는 회사'에 대해 입찰자격 제한을 뒀다. 이 같은 조항은 그간 사업 실적이 많은 회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실적이 아예 없거나 적은 회사에게는 유리함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업 실적이 많은 회사의 경우 각종 소송전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사업 실적이 없는 회사의 경우 소송 실적도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신동아아파트 조합장은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정근혜 양평 신동아재건축 조합장은 "이 같은 내용으로 입찰하면 특정 신탁회사가 자격 제한을 받게 되는지 몰랐다"며 "더 많은 신탁회사가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신동아아파트 조합은 오는 25일 조합 총회를 통해 신탁사를 선정한다. 신동아아파트 조합이 지난달 마감한 입찰에는 하나자산신탁과 대신자산신탁이 입찰했다. 박순원기자 ss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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