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형 부동산' 뜨더니…"원수에게 권한다" 오명 얻은 이유 [더 머니이스트-최원철의 미래집]
by 포커스선2025. 5. 15.
'수익형 부동산' 뜨더니…"원수에게 권한다" 오명 얻은 이유 [더 머니이스트-최원철의 미래집]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도심에 가득한 빈 건물, 용도 바꿔 활용해야 합니다
공실로 가득한 수도권의 한 상가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코로나19 이후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대도시에서는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고급 오피스 공실률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의 해외 부동산 펀드들도 많은 손실을 기록했지만, 선진국들은 비교적 유연하게 대응하는 상황입니다.
파리, 런던, 로마 등 유럽 주요 도시는 수백년, 때로는 수천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을 보존하면서 용도만 변경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호텔이 부족하면 궁전을 호텔로 전환하고, 백화점이 부족하면 기존의 오래된 건물을 백화점으로 리모델링해 사용하는 식입니다.
미국도 비교적 유연한 방식으로 자산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맨해튼 스튜디오들은 개인 사무실이나 주택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기존 소호 거리 오래된 건물들도 실내만 리모델링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규모 오피스 공실이 발생하면서 자산운용에 문제가 생길 경우 매우 파격적인 조치도 내놓고 있습니다.
올해 초 워싱턴DC에서는 오피스를 비주거 용도로 바꾸는 ‘오피스 투 애니싱 프로그램’(OfficetoAnythingProgram)을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낡고 쓸모 없어진 오피스를 상업·소매·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비주거 공간으로 바꾸도록 장려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오피스를 활용도 높은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으로 바꾸면 세금도 15년간 동결해줍니다.
공실이 많은 경기 하남의 한 지식산업센터 모습. 사진=한경DB 주거 전환을 위한 '하우징 인 다운타운'(HousinginDowntown) 프로그램도 작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노후 상업시설을 주거시설로 전환해 2028년까지 도심에 1만5000명 이상의 인구를 유입시킨다는 계획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20년 세금 감면 혜택을 받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피스를 호텔이나 주거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내는 어떤 상황일까요? 최근 서울 강서구 마곡지역에 대규모 오피스가 공급되면서 올해 1분기 수도권의 오피스 공실률이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재택근무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그동안 서울 주요 지역의 공실률은 안정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강남권(GBD)은 공실률이 4.5%로 다소 상승했고, 도심권(CBD)은 4.1%, 여의도권(YBD)은 3.0%로 비교적 양호한 편입니다. 다만 마곡의 대규모 오피스 공급으로 인해 서울 기타 권역의 공실률은 16.4%로 폭증했습니다. 지난해 1분기에 2.9%였던 수치가 무려 13.5%포인트(P)나 급등한 것입니다.
문제는 올해 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공급 과잉으로 인한 공실이 늘었다는 점입니다. 올해 3월 말 기준 전국의 지식산업센터는 총 1545곳에 달하며, 이 중 수도권이 1190곳으로 77%를 차지했습니다. 하남, 고양 등 경기 지역에 714곳이 집중돼 있고, 서울에는 395곳, 인천에도 81곳의 지식산업센터가 있습니다.
이들 시설의 임대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매매량은 2023년 3395건으로, 거래 금액도 1조4297억원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경매 물건도 지난해 1594건까지 급증했는데, 정작 낙찰된 비율은 26.3%에 불과합니다. 한때 수익형 부동산으로 주목받았던 지식산업센터가 이제는 ‘원수에게 권하는 부동산’이라는 오명까지 얻게 된 셈입니다.
서울 중구 충무로의 한 폐업한 상가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스1 공실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선진국처럼 건축물의 용도를 전환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생활형 숙박시설을 주거용 오피스텔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지식산업센터도 기업형 임대주택으로 전환해 기존 건축물을 활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서울의 경우 전세 사기의 여파로 빌라나 오피스텔 공급이 위축되면서 원룸 월세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거 수요는 꾸준한데 아파트 공급은 제한적이고, 오피스텔과 빌라 시장 확대도 어려운 결과입니다. 지식산업센터를 세계적인 주거 트렌드인 코리빙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소규모 리모델링만 거쳐 원룸 월세 수요를 흡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공실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건축물 용도는 여전히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미국처럼 필요에 따라 건축물의 용도를 과감하게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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